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해왕성에 대한 모든 것

by ................♪ 2021. 9. 2.

목차

    반응형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포세이돈[8]에서 유래했다. 해왕성도 포세이돈을 중국[9]에서 번역한 걸 한자문화권에서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다.[10]

    천왕성과 닮은 점이 많은 행성인데, 먼저 반지름이 천왕성보다 지구 지름의 1/5만큼 작은 정도로 거의 비슷한 크기이며, 대기에 포함된 메테인에 의해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도 비슷하다.

    목성의 대적반처럼 표면에 대흑점이 있는데, 지구 지름 정도의 크기로 상당히 크다. 짙은 푸른색 빛이 인상적이라 그런지, 뚜렷한 고리가 있는 토성과 더불어 인기가 꽤 있는 행성이다.

    발견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영국-대륙 구도가 이어졌던 미적분학 논쟁과 비슷한 구도였지만, 해왕성 발견 건에서는 영국 쪽이 일찍 포기했다. 따라서 공식적인 발견자는 정밀하게 위치를 계산한 프랑스 수학자 위르뱅 장 조제프 르베리에(Urbain Jean Joseph Le Verrier, 1811~1870), 그리고 이 자료를 토대로 1846년 9월 23일 밤과 24일 새벽 사이에 관측에 성공한 독일인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1812~1910)와 하인리히 루트비히 다레스트(Heinrich Ludwig d'Arrest. 1822~1875) 세 명이 인정 받았다.

    영국에서는 이들보다 이전에 영국 수학자 메리 서머빌이 천왕성의 궤도를 방해하는 가상의 행성에 관한 논문을 써서 해왕성의 존재를 추정하였으나 추론에 그쳤고, 서머빌의 추론을 바탕으로 존 쿠치 애덤스가 르베리에와 거의 같은 시기에 해왕성의 위치를 계산해냈으나, 애덤스가 워낙 간단하게 정리된 결과물만을 보내는 바람에 케임브리지 천문대의 천문학자들이 설명을 못 알아듣고 애덤스에게 해설을 요구하는 사이 관측의 영광은 날아가고 말았다. 영국에서는 이 때문에 발끈하여 프랑스 학계에 키배를 걸려 들었지만, 당사자인 애덤스가 '알아먹지 못하게 설명한 나의 잘못'이라며 르베리에와 갈레의 공을 추켜세워서 상황 정리.
    이심률이 상당한 명왕성이 해왕성 궤도 안으로 들어올 때가 있었기에 명왕성이 행성 분류에서 제외되기 전에도 해왕성이 마지막 행성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11], 명왕성이 왜행성으로 분류된 지금에 와서는 다 소용없는 얘기가 됐다.

    실시 등급이 8등급이므로 지구에서 육안으로 관측할 수 없고 쌍안경이 있어야 한다.[12] 해왕성 1일은 지구 기준 16시간, 해왕성 1년은 지구 기준 165년. 평균 기온 -240도. 중력은 지구의 1.14배로 지구에서 체중이 100 kg인 사람이 해왕성에 가면 114 kg로 더 늘어난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행성이기 때문에 근대에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해왕성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재미있게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미 17세기에 최초로 해왕성을 관측한 적이 있다. 목성을 조사하면서 배경에 별 하나를 그려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해왕성이었던 것. 물론 그가 당시 해왕성을 행성이 아닌 다른 항성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발견으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2009년에 호주 멜버른 대학의 데이비드 제이미슨 교수가 갈릴레이의 자료에서 해왕성을 인지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설은 1846년 프랑스의 수학자 위르뱅 르베리에의 공식을 바탕으로 독일 천문학자인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와 헨리크 다레스트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천왕성이 우연적으로 발견된 것과는 달리, 해왕성은 정밀한 과학적 계산을 통해 발견된 첫 행성이고, 현재까지 마지막 행성이기도 하다. 르베리에는 관측된 천왕성의 궤도와 뉴턴 역학으로 유도해 낸 천왕성의 궤도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를 두고 천왕성의 궤도에 간섭하는 미지의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13], 그 행성이 있을 법한 궤도를 오로지 펜 끝으로만 계산해 냈다. 1846년 8월 31일에 그는 미지의 행성이 천왕성에 미치는 중력 섭동을 계산하여 마침내 해왕성의 예상 위치를 최종적으로 계산했고, 이 결과를 얼마 후 편지로 받은 갈레는 관측을 시작한 바로 그날 밤에 르베리에가 예측한 위치의 불과 1도 거리에서 해왕성 발견에 성공한다. 이후 르베리에는 1859년에는 역시 당시의 뉴턴 역학만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던 수성의 세차운동을 두고 미지의 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창하기도 했는데, 이는 훗날 에딩턴이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하게 된다.



    반응형

    댓글